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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2-26 18:32
<영화강좌 - "영상 연출 기초와 스토리보드의 이해"> 제3강 - 프레임의 이해 : 프레임 포맷의 역사
 글쓴이 : CINETOON (123.♡.85.26)
조회 : 3,906  

(2) 프레임 포맷의 역사

지금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가늘고 긴 모양의 필름은 현재 코닥 필름의 창립자인 조지 이스트만이 1890년대에 처음 만들어낸 것으로, 그 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영화를 촬영하고 그 결과물을 영사하는 데 사용된 시스템은 100여 가지가 넘는다. 물론 현재 남아있는 건 그 중 몇 가지에 불과하다.
무성영화의 전성기, 미국의 대형 스튜디오들이 영화 제작과 배급을 독점하기 시작하던 시대에는 1:1.33의 화면 종횡비가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하지만 그 시기에도 그리피스(D.W.Griffith-‘국가의 탄생’등) 같은 감독들은 직사각형의 프레임이 마음에 안 들었던지 마스킹을 이용해 프레임을 일시적으로 원형으로 만들어 쓰기도 했다.

직사각형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화면 폭이 너무 좁다고 생각하는 감독들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나폴레옹’을 만든 아벨 강스 같은 감독인데, 그는 가로로 이어진 3개의 화면을 동시에 촬영한 뒤 3개의 스크린을 옆으로 늘어놓고 동시에 상영하는 극단적인 넓이를 가진 영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와 반대로 좀 더 정사각형에 가까운 프레임을 가진 영화를 만드는 시도도 있었다.

이런 여러 가지 실험들이 있기는 했지만 1:1.33의 화면 종횡비는 무성영화 시대를 지배하는 35mm 영화의 기준 프레임 포맷으로 자리잡게 되고, 1932년 미국의 영화예술 및 기술 아카데미(지금 아카데미 영화제를 주최하는 그 단체다)는 1:1.33을 영화의 표준화면 종횡비로 제정하기도 했다.

그 후 유성영화가 만들어지면서 프레임의 일부분을 사운드 트랙에 내주게 되는데, 그 때문에 필름의 프레임의 넓이가 조금 좁아지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1:1.33의 화면비를 유지하기 위해서 프레임의 높이를 조금 낮추다 보니 1:1.37이 적당한 화면 종횡비가 되었고, 아카데미 애퍼춰(Academy Aperture)라고 불리는 이 프레임 포맷은 1950년대에 TV가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전까지는 35mm 영화를 지배하게 된다.





<Full Frame 1> 1: 1.33













<Full Frame 1> 1: 1.37







1950년대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TV는 당시 호황을 누리던 영화 산업을 심각하게 위협하기 시작한다. 공짜로 집에서 편하게 TV를 볼 수 있는데 극장까지 힘들게 가서 영화를 볼 이유가 있을까? 있어야 산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영화에 와이드 스크린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다. TV는 당시의 영화와 같은 1:1.33의 화면 종횡비를 채택하고 있었고, 이는 불과 몇 년 전까지도 TV의 기준이 되고 있었다.

와이드 스크린 바람이 불면서 어느 정도 표준이 자리잡기 전까지 시네라마, 시네마스코프, 비스타비전, 슈퍼 파나비전, 슈퍼 파나비전 70 등 이름도 생소한 다양한 포맷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는 했다. 하지만 영화는 촬영에서 영사에 이르는 전체 과정을 거쳐서 많은 단계의 기술적인 요인들이 투입되기 때문에 무작정 다양성을 보장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일정 정도의 표준이 되는 화면 종횡비가 자리 잡을 수 밖에 없는데 여기에는 산업적인 요인이 상당히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1952년 등장한 시네라마(Cinerama)는 1 : 2.85의 화면 종횡비를 가진 프레임으로 한때 '라마(rama)’라는 접미어를 붙이는 것이 유행이 되었을 정도로 이기를 끌었던 프레임 포맷이었다. 하지만 이 거대하게 넓은 화면을 채울 수 있는 이야기의 종류도 상당히 한정된 것이었고, 또 그것을 채우는 데는 돈도 너무 많이 들었다. 그래서 화끈하지만 짧은 전성기만을 보낸 채 사라져 버린다. 

그 이후 등장한 것이 1 : 2.35의 화면 종횡비를 가진 시네마스코프(Cinemascope)였다. 1953년 폭스가 <성의 The Robe>를 발표하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시네마스코프는 시네라마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TV의 도전에 대응할 수 있는 대안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헐리우드의 스튜디오들은 앞 다투어 이 방식의 영화들을 제작하기 시작했으며 스펙터클한 화면을 가지는 것이 유리한 서부극, 서사극, 뮤지컬 등에서 많은 시네마스코프 방식의 영화들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애너모픽 렌즈를 이용한 압축과 확대의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에 화질이 떨어지는 것이 피할 수 없는 결점이었고, 이후 파나비젼의 등장으로 자리를 뺏기게 된다.

파나비젼이 내 놓은 파나비전 방식은 70mm 필름을 이용하면서 1 : 1.85 혹은 1 : 2.35의 화면 종횡비를 가지면서도 화질이 깨끗한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 결과로 1960대 초반 시네마스코프의 아성을 앞지르게 된다. 하지만 파나비전은 카메라의 생산과 대여사업을 본사가 독점했으며, 따라서 파나비전 방식의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70mm 필름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도 비용 부담이 만만치는 않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어, 대작을 제외하고는 이 방식을 채택하기가 힘들게 된다. 

이상에서 언급한 방식들 이외에도 1950년대 이후 수 많은 와이드 스크린 방식이 개발되고 사라져 가는 가운데에서 영화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먼저 TV와의 관계가 변했다. 예전에는 적이라고만 생각했던 TV가 공생관계의 파트너로 발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명확하게 확인하게 된 계기가 1966년 ABC TV가 <콰이강의 다리>를 방송에 내보낸 것이라고 한다. 당시 이 영화를 6천만명의 시청자가 보았다고 하는데, 이는 당시 최고 인기 TV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가볍에 넘어서는 것이었다. 이로써 TV는 영화의 파트너가 되었다. 따라서 TV와는 다른 영화만의 독특한 존재 방식으로서의 와이드 스크린에 대한 욕구도 많이 줄어들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영화가 산업적으로 발달하면서 배급이 영화산업에서 점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고, 이를 위해서 멀티플렉스가 점차 극장의 표준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멀티플렉스는 관객들에게 다양한 영화 경험과 문화 공간을 제공할 수는 있지만 수익 구조상 공간적인 한계가 분명히 있기 때문에, 각각의 스크린은 점점 작아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아무리 스펙터클한 화면을 가진 영화라 하더라도 극장에서 상영되는 과정에서 화면 규모는 축소될 수 밖에 없다. 특히 스크린과 영화의 화면 비율이 달라 화면의 좌우가 잘려져 나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저런 우여 곡절을 겪으면서 영화의 화면 종횡비는 두세 가지 정도로 거의 정착이 된다. 현재 미국에서는 1 : 1.85의 화면 종횡비가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거의 표준으로 자리 잡은 상태이며 유럽쪽에서도 1 : 1.66에서 점차로   1 : 1.85로 옮겨가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이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며 아직도 영화만의 스펙터클을 추구하는 영화들은 1 : 2.35의 파나비젼 방식이나 슈퍼 35mm 방식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1 : 2.85 시네라마>






<1 : 2.35 시네마스코프, 파나비전>







<1 : 1.85 와이드 스크린>







<1 : 1.66 와이드 스크린>








국내 영화들의 화면 종횡비


국내 영화들의 화면 종횡비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영화 산업의 변화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어 왔다. 1960년대 시네마스코프와 파나비전의 헐리우드 영화 시장을 1 : 2.35 비율의 와이드 스크린으로 이끌어 가던 시절, 국내에서도 많은 영화들이 시네마스코프로 만들어졌다.

1962년 동일한 원작을 가진 홍성기 감독의 <춘향전>과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이 ‘한국 최초의 컬러 시네마스코프’를 내세우며 거의 동시에 개봉한 이후로, 시네마스코프는 전성기를 맞이해 1970년대 후반까지 제작된 영화들 중 거의 90%에 가까운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김미현의 중앙대 박사학위 논문 <한국 시네마스코프에 대한 역사적 연구> 참조).

하지만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 영화는 시련기를 맞이하게 된다. 관객이 줄어들면서 영화 산업도 위축되고 시네마스코프는 돈 많이 잡아먹는 귀찮은 존재일 뿐이었다. 그렇게 해서 1980 ~ 90년대에 제작된 대부분의 영화들은 1 : 1.85 와이드 스크린 방식을 채택하게 된다.

이러한 흐름을 바꿔놓은 영화가 2000년 개봉한 <공동경비구역 JSA>였다. 영화의 주제를 제대로 드러내기 위해서 스펙터클한 영상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린 제작진은 35mm 카메라를 개조한 슈퍼 35mm 방식으로 이 영화를 촬영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기는 했지만 여하간 개봉된 영화는 당시 한국 영화 흥행기록을 갈아 치웠고, 그 이후로 찾아온 한국 영화의 전성기와 함께 슈퍼 35mm 방식의 와이드 스크린도 전성기를 향해 가고 있다.
그나마 2002년 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영화에만 해당하던 것이 2003년을 넘어서면서는 코메디, 멜로에 이르기까지 장르의 구분없이 그 영역을 점차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제는 어느 정도 기대를 모은다고 하는 영화는 대부분 1 :  2.35의 화면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과연 이런 스펙터클한 화면이 어떤 영화에나 다 어울리는 지는 좀 더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가 아닌 가 싶다. 특히나 거의 대부분의 극장들이 멀티플렉스로 대체되고 있는 가운데, 1 : 2.35의 넓은 화면비를 받아낼 수 있는 스크린이 몇 개나 되는 지 파악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과연 그런 시도가 관객들에게 최상의 관람경험을 보장해 줄 수 있을지 조금은 의문스럽기도 하다. 사실 본인이 제작에 참여한 영화도 이 방식의 와이드 스크린을 사용한 적이 있는데, 막상 극장에 가 보니 애써 찍은 화면이 다 잘려 나와서 가슴이 아파 본 적이 있다. 

하여간 현실적으로 화면 종횡비는 감독이나 프로듀서 등의 영화 제작진들에게 중요한 선택의 문제가 되었다. 어느 것이 옳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지만, 경우의 수가 많지 않은 영화 프레임의 선택의 가능성을 최대로 활용하여 관객들에게 최상의 관람기회를 제공하고 싶어 하는 영화인들의 노력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스토리보드와 프레임 포맷

스토리보드는 나중에 만들어질 영상의 예상도를 평면상에 펼쳐서 미리 확인하기 위한 청사진이다.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마찬가지로 그 스토리보드를 바탕으로 최종 영상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스토리보드 혹은 콘티뉴어티에 문제가 있을 경우 실제 제작단계에서 혼선을 빚을 수 있다. 따라서 스토리보드 작업은 가능한 한 실제 제작과 유사한 조건을 기준으로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

이 원칙은 프레임 포맷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동일한 장면이라고 하더라도 선택하는 프레임 포맷에 따라 프레임 안에 들어가는 피사체의 양이 심하게는 두 배 이상 차이가 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당연히 스토리보드와 실제 촬영 현장에서의 프레임 포맷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촬영 단계는 물론 후반 작업 단계에서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프로덕션 단계와 가능한 동일한 스토리보드를 그려내는 것은 제작 전 과정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는 중요한 요건이다.